많은 게임 리뷰 채널에서 이 단어가 언급된다. 유비소프트는 어쌔신 크리드와 파 크라이 시리즈로 유명한, 규모가 상당한 게임 제작 회사다. 이 회사에서 만드는 오픈월드 게임들은 서로 굉장히 달라 보인다. 무인도에서 총질을 하면서 도적단을 소탕할 때도 있고,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기어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하는 순간이 온다. 다른 게임에서 하던 일이랑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곧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다른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결국에는 알맹이는 같다고나 할까. 그 “알맹이”는 결국 오픈 월드를 구현하는 하나 방식, 패턴, 또는 archetype이며, 그것이 바로 유비식 오픈월드인 것이다.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의 특징을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꼽아 보자면
1. 방대한 맵, 그리고 맵에 “마커”로 표시되는 상호작용 가능한 “활동”들
2. 특정한 상호작용은 동일한 아이콘으로 맵에 여러 번 표시 됨
3. 맵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버튼을 누르면 해당 지역의 지도가 밝혀짐
4.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빠른 이동 시스템
5. 메인과 사이드가 명확히 분리되는 퀘스트 라인.
6. 반복되는 형식의 퀘스트 진행 과정.
정도가 되겠다. 이런 형식이 왜 게이머들의 비판을 받을까? 사실 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파 크라이 시리즈 모두 판매량을 보면 아무리 저런 비판이 있어도 잘 팔린다. “대중의 검증을 받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맵 마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퀘스트 라인과 빠른 이동은 매우 효율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음에 어디로 가야 퀘스트가 진행되는지 한참 헤매다가 욕을 하며 게임을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겨우 찾아냈을 때의 기쁨을 즐기기 위해서 참는 사람이 많을까? 이미 한 번 가 본 길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즉, 이러한 요소들은 플레이어를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비식 오픈월드가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는 게임의 멋진 그래픽을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 지쳐 게임에서는 별다른 노력과 고민 없이 수동적으로 게임을 반쯤은 “감상” 하고 싶은 현대의 게이머들이다. 실제로, 최근에 내가 유비식 오픈월드의 완성형이라고 볼 수 있는 Ghost of Tsushima (2020)를 플레이했을 때, 마음을 비우고 느긋한 마음으로 게임을 감상하는 느낌으로 플레이하기에 참 좋은 게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식 오픈월드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금방 질린다”는 것이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점점 커지는 미니맵, 그리고 그 위에 빼곡히 채워진 상호작용 가능 마커들을 보다 보면, 이건 거의 쏟아지는 잡무들을 마주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 한두 번이야 재밌지, 미니맵의 마커만 보면 그곳으로 이동했을 때 무엇을 하게 될지가 뻔하게 보이는데 굳이 거기로 찾아가서 세모 버튼을 누르고 싶어 지겠는가? 피곤이 밀려온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정말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구현해 놓았지만, 마커가 놓여있는 부분이 아니면 플레이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마커와 마커 사이를 이동하는데 쓸데없이 존재하는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유비소프트가 만든 게임이 아니더라도, 오픈월드를 표방하는 다양한 게임들이 이러한 형식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엄청난 돈과 시간, 노력이 들어가는 AAA급 타이틀 개발에 이미 대중에게 검증된 방법을 쓰지 말자고 할 책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각각의 게임마다 조금씩 자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서, 그 노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Marvel's Spiderman (2018)을 보면, 빠른 이동을 상당히 제한해 놓고, 이동 그 자체를 게임의 커다란 재미 요소로 만들어 놓았다. Ghost of Tsushima (2020)에서는 미니맵을 없애고, “인도하는 바람”이라는 세계관 내부 요소를 이용해서 경치를 잘 바라보면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결국 알맹이는 비슷하고, 단물 다 빠진 이런 형태의 게임은 정말 정말 금방 질린다. 게임 볼륨을 작게 해서 질릴 새도 없이 게임이 끝나 버리게 하는 것이 스파이더맨 제작진의 또 다른 대응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면 오픈 월드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유비식 오픈월드에 질린 게이머들이 새로운 형태의 오픈월드에 목말라하고 있던 2017년,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 탁월한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다. 이 세기의 역작이 “이거 된다!”하며 보여준 젤다식 오픈월드는 유비식 오픈월드의 대척점에 서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고, 이후 여러 게임에서 벤치마킹 되었다. 최근에 출시되어 대박을 친 Elden Ring도 오픈월드의 구성에 있어서 젤다식 오픈월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오픈월드를 만드는 게임사라면 고민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젤다식 오픈월드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써 보는 것으로…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게임 비평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에세이 채널에서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해당 영상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폰 13 미니가 불편해졌다. 그냥 쓸까? 아이폰 15 프로로 바꿀까? 아니면 S23으로 바꿀까? (0) | 2023.12.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