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마트폰 역사
나는 2010년 경 스마트폰이 처음 대중화 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았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스마트폰 그 자체에 흥미가 있었다. 한국에 아이폰이 없었을 때는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를 사용하면서, 수시로 새로운 커스텀 롬을 설치하고 나만의 모바일 UI를 만드는 것에 많은 시간을 썼다. 커스텀 롬을 올리기 쉬운 레퍼런스 폰을 선호했고, 그래서 넥서스 원, 갤럭시 넥서스, 넥서스 5 등을 순서대로 사용했던 것 같다.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 후 지켜보다가, 술자리에서 친구의 아이폰 6S를 만져 보았는데 너무 예뻤다. 나도 아이폰 6S로 갈아탔다. 하지만 당시의 iOS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제한사항이 많아서, 많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앱 간 데이터 통신이 거의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어서, 당시 사용하던 가계부 어플에서 문자 자동인식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여 너무 불편했다. 극단적 커스텀에 적응되어 있던 나로서는 그러한 제한사항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래서 다시 안드로이드로 돌아왔었다. 당시 핫했던 원플러스 3T 등을 거쳐 갤럭시 S8, 갤럭시 S10e 등을 만족스럽게 사용했었다. 이 즈음해서 갤럭시 폰이 많이 다듬어지고, 삼성페이도 출시되면서 나름 만족스럽게 사용했던 것 같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연구실에서 맥북을 사용하게 되며, 애플 생태계에 다시 흥미가 생겼다. MKBHD나 Dave2D 같은 테크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아이폰도 한 번 써 보고 싶어 져서 조사를 했다. 이전에 겪었던 불편함들의 상당수가 해결되었음을 알았고, 통신사 약정으로 싼 값에 재고로 남은 아이폰 X를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이동을 시도했다.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아이폰의 매력에 빠졌다. 뭔가 알게 모르게 잘 정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것이 애플 감성인가 하며 좋아라 하며 사용했다. 당시에는 안드로이드 UI가 아직도 조금씩은 버벅거리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 때였기 때문에 체감이 컸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 그랬는지, 자유와 선택이 주는 피로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마음에 평온함을 주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같은 책을 읽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2 mini가 출시되었을 때 업그레이드 했고, 잘 사용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군대에 가게 되었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아이폰 + KT 조합의 경우 신호가 정말 잘 안터졌다. 게다가 핸드폰의 용도가 많이 바뀌었다. 군대 가기 전 자취 할 때는 유튜브나 웹툰, 정보검색 등의 대부분은 컴퓨터 모니터로 하고, 핸드폰은 주로 카톡과 음악감상, 급한 정보 검색 등에 사용했었다. 군대에서는 컴퓨터나 태블릿을 사용할 수 없었고, 핸드폰만 사용할 수 있었다.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 창구인 핸드폰으로 영상도 보고, 인터넷도 보고, 만화도 보고, 주말엔 부대원과 게임도 좀 하려다 보니 12 mini의 작은 화면과 짧은 배터리 타임은 너무 답답했다. 갤럭시 S21 Ultra로 바꾸어서 큰 화면과 든든한 배터리를 잘 즐겼다. 하지만 전역할 때쯤이 되자, 손목에 무리가 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오른손 엄지의 시큰함이었다. 드꿰르뱅 건초염이라는 진단을 마주하게 됐을 때, 핸드폰 사용을 줄이고 가벼운 폰으로 바꿔야겠다 싶었다.
전역 후 무거운 S21 Ultra를 처분하고, 가벼운 S22로 바꿨다.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다시 맥북을 사용하게 되었다. 자연히 아이폰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거의 새 상품인 S22를 괜찮은 값에 당근 하고, 약간의 돈을 보태어 13 pro로 바꾸었다. 굉장히 좋은 폰이었다. 애플 생태계에 깊게 빠져들면서 다양한 독점적 액세서리와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 애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13 프로는 너무 무거웠다. 또 스테인리스 스틸 테두리가 너무 쉽게 지저분해져 케이스가 강제되었다. 그렇다고 케이스를 씌우면 더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왔다. 손목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볍고, 핸드폰 사용을 덜 하게 해 줄 폰이 필요해졌다. 13 프로를 중고로 처분하고, 돈을 남기면서 아이폰 13 미니를 구매했다. 여기까지가 약 3개월 정도 전의 일이다.
문제의 시작
얼마 전 휴가 기간이 생겨서 여유가 생기고 심심함과 무료함이 찾아왔다. 최근 출시 되었다는 아이폰 15 프로의 소식이 보였다. 가벼워졌다고 한다. 실제로 매장에 가서 만져 보니 꽤 가볍다. 테두리의 유광 스테인리스 스틸도 무광 티타늄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포트는 USB-C다. 내가 13 프로에서 불만족했던 부분들이 거의 해결된 것이다. 게다가 60Hz인 아이폰 13 미니에 비해 120Hz의 화면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13 미니만의 매력도 크다는 것, 그리고 기능적으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15 프로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이후 지난 1주일 동안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서로 거세게 싸우고 있다. 심지어 와이프가 사용하는 S23도 탐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당근을 기웃거리며 13 미니의 가격과 15 프로, S23의 가격을 비교하며, 어느 정도 비용을 들이면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느라 눈이 빠질 뻔했다. 거래를 하기로 했다가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파투 내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또다시 매물을 검색하기의 반복이다. 거의 자아 분열 수준이다. 와이프에게도 계속 이런 고민들을 토로하다 보니 한심해하는 눈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글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싶었다.
바꿔야 하는 이유
- 현재 사용하는 아이폰 13 미니 고유의 문제
- 화면이 다소 작아서 장시간 사용시 눈이 피로함.
- 60Hz의 화면에 완전한 적응이 결코 불가능할 것 같은 예감.
- 배터리가 빠르게 소모되어 불안감이 있는 동시에, 라이트닝 포트를 따로 챙겨야 하는 불편함.
- 핸드폰이 각져서 그립감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
- 뒤판이 유광이라 쉽게 더러워져서, 자꾸 닦게 된다.
- iOS의 문제
- iOS에서 벗어나, 애플 생태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 삼성페이에 비해 애플페이는 거의 무쓸모에 가깝다.
- iOS는 커스텀화에 많은 제한이 있어서 나만의 폰 같은 느낌이 없다.
- 무료해서 새로운 기기를 써 보고 싶다.
바꾸지 말아야 하는 이유
- 포기해야 하는 아이폰 13 미니만의 장점
- 작아서 한 손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 가벼워서 손목에 부담이 적다.
- 포기해야 하는 iOS의 장점
- Airpods Pro 2와의 완벽한 호환성
- 높은 퀄리티의 앱 - Things 3, Vellum, Strong 등
- 안드로이드 폰에 비해 커스텀화의 자유가 적어 시간 낭비가 적다.
- 핸드폰을 바꾸는 것은 시간적, 정신적, 금전적 소모가 크다.
- 새로운 핸드폰을 셋업하고 최적화 하는데 걸리는 시간
- 새로운 폰에 맞는 악세서리를 검색하고 구매하는데 낭비되는 시간과 돈
- 기존 폰 및 액세서리를 중고판매 해야 함 → 스트레스, 시간 소모, 감가상각의 실현
- 20 ~ 70만 원 정도의 지출
-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불편함은 없다.
결론
현재 옵션은 1) 지금 폰 망가질 때까지 쓰기, 2) 아이폰 15 프로로 바꾸기, 3) 갤럭시 S23으로 바꾸기의 세 가지다.
1번 옵션의 장점은 시간적, 정신적, 금전적 소모가 없다는 것이다. 단점은 재미가 없고, 현재 폰의 단점이 계속해서 눈에 밟힐 것이라는 점이다.
2번 옵션의 경우 장점은 현재 핸드폰에 있는 불만을 모두 해결할 수 있고, 같은 아이폰이기 때문에 변화에서 오는 마찰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단점은 가벼워졌다고 해도 188g으로 13 미니에 비해 약 50g이나 더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올 확률이 높고,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3번 옵션의 장점은 현재 핸드폰의 불만을 모두 해결할 수 있고, 무게는 28g 정도 추가되니 괜찮다는 것이다. 커스텀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서 재미가 있고, 삼성페이처럼 한국에서 사용하기에 더 유용한 기능이 많아지는 것도 장점이며,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다. 단점은 전환에 마찰이 꽤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에어팟 프로 2의 사용성이 감소할 것이 가장 먼저 걱정되고, 맥세이프 충전기/거치대들을 처분해야 한다. 이미 애플 생태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물품들과 소프트웨어를 구매했고, 적응했고, 최적화해 놓았다. 이런 최적화 작업을 다시 하는 것은 웬만한 필요가 아니고선 정당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폰을 바꾸는 순간 내 성격상 결국 케이스도 이것저것 사고, 에어팟 프로도 처분하고 소니의 WF-1000XM5를 구매할 것 같다. 최소 1주일은 핸드폰과 주변기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겠지.
결국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은 1번 옵션이다.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불편함이 크지 않다. 새로운 핸드폰을 사고, 셋팅하면서 재미를 얻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고, 운동을 하고, 소중한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지루하다. 안드로이드로 바꾸면 셋팅하는 재미를 잠깐 느끼겠지만, 금세 또 지루해질 것이 뻔하다. 이제 스마트폰이 지루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흥미를 찾을 때다. 지루하다는 것이 사실은 아이폰의 장점임을 항상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스마트폰은 이제 그냥 도구일 뿐,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에 집중하고, 실제로 그 일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자. FC660C를 사면서 커스텀 키보드를 졸업했듯, 이제 스마트폰을 졸업할 때가 됐다. 적어도 고장이 나기 전까지는.
갑자기 13 미니가 조금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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