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와 미장센이 살아있는 영화. 평론가들이 좋아할 은유와 상징이 의식적으로 곳곳에 심어져 있는 듯 했다.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오랜만에 만든 작품이다. 엘리트 강력계 형사인 장해준 (박해일)이 살인사건 용의자인 송서래 (탕웨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이야기가 나름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고, 캐릭터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내용의 전개가 조금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다. 해준이 이별을 고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서래의 이후 행보가 나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먼저 시도해야하지 않는가. 서래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 속을 알 수 없고, 정체조차 모호한 캐릭터로 설계되어 그런 비상식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멋진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스토리의 개연성과 재미 보다는 주제의식에 조금 더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 대해서 더 찾아보니,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박찬욱이라는 거장의 후광효과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정한 영화적 재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평론가들이 열광하는 대비와 은유, 모티프 등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소들의 상징성이 청자의 장면에 대한 인식 과정 속에 무의식적으로 잘 침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이나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생각의 확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멋진 상징이다. <기생충>의 “냄새” 처럼, 직관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작위적이지 않은.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영화적 장치들이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서래는 왼쪽으로 이동하고, 해준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에 사람들은 “대비”가 있다며 높게 평가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그냥 길을 엇갈렸다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녹색으로도 보이고 파란색으로 보이는 드레스도 서래의 미스터리함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칭송받는데, 개인적으로는 대놓고 나 상징이요 하는 영화적 장치임이 너무 빤히 보였다.
이 영화를 보고, 그럴듯한 은유와 상징을 영화 이곳 저곳에 배치하는 것이 흥미진진하고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전자는 정말 잘 해서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그것은 그것 대로 위대한 영화적 업적일지 모르겠으나, <올드보이>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스토리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박해일은 너무 멋졌고, 탕웨이는 아름다웠다. 내 영화 취향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해 준 영화였다. 평점을 매기자면 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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